진흥왕 순수비란?
진흥왕은 가야와 한강 유역의 땅을 차지하고 함경도까지 진출하는 등 신라의 영토를 넓히고 삼국을 통일하는 기초를 닦은 왕이다.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을 ‘순수’라고 하는데, 진흥왕은 새롭게 신라 땅이 된 지역을 순수한 뒤 기념 비석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진흥왕 순수비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는 모두 4개이다. 서울의 북한산 비봉 정상에 세워진 북한산비, 경상남도 화왕산에 있던 창녕비, 함경남도 장진 군 황초령에 세워진 황초령비, 함경남도 이원군 마운령에 세워진 마운령비 등이다. 진흥왕 순수비 4개가 모두 높고 가파른 산이자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세워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산비
서울 북한산 비봉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비석이 닳고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높이 약 168cm, 너비 약 76cm의 크기이다. 이 비석은 추사 김정희에 의해 진흥왕 순수비로 확인되었는데, 비문은 해서와 예서체의 중간쯤 되는 서체로 2줄, 각줄 32자씩을 새겼다. 내용은 황초령비 마운령비와 거의 비슷한데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며, 수행한 사람들의 관직 및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다. 이 비는 568년에서 569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창녕비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신라시대의 비자벌)에 위치한 이 비석은 굳은 화강암 바위의 표면을 약간 다듬은 것으로 높이 약 1.78m, 비문은 27줄에 모두 643자가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561년(진흥왕 22) 2월 1일에 세웠다는 것, 지방 순찰을 위하여 진흥왕이 대등·사방 군주·도사등 여러 관리들을 데리고 이곳을 다녀갔다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황초령비
함경남도 오로군 황초령에 위치해 있었으나 1852년 차령진으로 옮겨졌다. 황초령은 방초령 또는 초활령, 초방령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비석도 이에 따라 다르게 부를 때가 있다. 비석은 화강암의 표면을 갈아서 만든 것으로 현재는 파괴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부분은 3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그 마지막 것은 1931년 발견되었다. <동국문헌비고>에 인용된 <해동집고록>의 기사, 마운령 순수비 등과 대비하여 보면 이 비석이 본래는 12줄 420자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씨는 해서체와 예서체가 섞여 있으며, 그 내용은 568년 8월 진흥왕이 이 지방에 와서 민심의 동향을 살펴보고 신라의 국방경비에 공이 있는 자를 표창하는 내용이며, 왕을 수행했던 관리들의 출신부와 관직명이 기록되어 있다.

마운령비
568년 진흥왕이 이 지역을 순수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으로 높이 1.65m, 너비 0.42m 크기의 화강암 비석이다. 앞쪽에는 26자씩 10줄, 뒤쪽에 8줄 등 모두 415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중 해독 가능한 것은 390여 자이다. 이 비문에는 진흥왕의 업적과 변방을 순수하는 목적, 그리고 비를 세우게 된 연유 등이 새겨져 있고, 마지막 부분에는 왕을 수행했던 신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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